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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HOT 앨범 분석 - 2

deok

1집 분석에 이어 이번에는 2집(1997.7)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2집으로 말하자면 당시 HOT가 할 수 있던 모오-든 컨셉을 다 끌어다 썼다. 노래 구성을 보면 그렇다. 일단 명곡이라 불리는 노래들이 여기 제법 수록돼있다. 앨범 표지는 마치 그래피티를 한 듯 멤버들의 개성을 살린 캐릭터로 표현됐는데, 이후 HOT와 '툰(toon)'내지는 '캐릭터'와의 만남은 계속 이어졌다. 3집에 이르러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만화 <언플러그드보이(1997)><오디션(1998)>의 작가 천계영이 HOT 멤버들을 각각 그렸다. 그리고 그 천계영의 캐릭터로 팔린 HOT 굿즈가 엄청났다. (ㄷㄷ) 수록곡 '우리들의 맹세'의 뮤직비디오는 아예 천계영이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됐다. 당대 최고의 로맨스 만화가와 최고 아이돌의 만남이라니 정말 엄청났다. 

이런 캐릭터 사업의 일환으로, 앞에서도 언급한 음료수 '틱톡'에 새겨진 동글동글한 느낌의 HOT 멤버 캐릭터 또한 대박을 쳤다. 당시에 캔을 칼로 잘라서 모서리를 다듬은 뒤에 줄을 꿰서 가방에 달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는데, 이거 만들다가 여러 명 손가락 벴었다. 물론 필자도 그 여러 명에 포함된다. 1집땐 기껏해야 문희준 장갑이나 책받침, 파일, 엽서 따위에 불과했던 굿즈가 '캐릭터'를 등에 업으며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그 시점이 바로 이 2집쯤이었던 것 같다. 

다시 2집으로 돌아와서. 제목은 모두가 다 알듯 Wolf and Sheep, 즉 '늑대와 양'이다. 동명의 곡도 수록돼있다. 엄청난 곡이다. 뒤에 가서 설명하기로. 

1. Go! H.O.T.!

2. 늑대와 양

3.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4. We Are The Future

5. 행복

6. 열등감

7. 12번째 생일

8. Tragedy (Feat. Deric W. Battiste)

9. 너와 나


► full album : https://www.youtube.com/watch?v=ljNnwnmWQ4M


1. Go! H.O.T.!

"Go 희준! Go 토니! Go 재원! Go 우혁! Go 강타!"로 시작하는 본격 HOT 입덕 인트로다. 후반부에 가면 'sexy guy is 강타, 헤이 핸섬! wit guy is 희준~ 희준이는 삐까삐까, mood guy is 토니, 헤이~펑키, wild guy is 우혁, 막내 재원이는 shy shy guy guy!(필자는 '잘생겼다'라고 들었는데, 가사를 보니 그게 아니다. 20년 만에 알았다)' 라고 한다. 사실상 이들의 캐릭터를 아주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1집에서 차마 누굴 좋아해야 할 지 고르지 못한 우유부단한 소녀들을 위해 친절하게 카테고리를 나눠준 셈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건 나중에... 


  

2. 늑대와 양

이 곡의 가장 유명한 부분은 역시 "헤이 늑대! 짐승같은- 하!" 이 파트다. 사실 이 부분의 원래 가사는 "헤이 늑대, 빌어먹을 짐승같은 놈들!" 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앨범이 발매된 뒤에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욕설이 가사에 들어갔다며 한바탕 난리가 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방송에서 이 노래는 "헤이 늑대, 짐승같은- 하!"로 불렸다. (위 링크에 나오는 음원에서도 빌어먹을, 놈들 은 나오지 않는다) 

노래의 메시지도 아주 강렬하다. 강자와 약자로 나뉘어 늑대와 양으로 비유한 것도 그렇고. 전 앨범에서 시작된 '전사'의 이미지, 그리고 저항의 이미지를 2집에서도 끌고 가는 곡이라 할 수 있다. 가사 하나하나 뜯어봐도 굉장히 저항적이다. 이 땅의, 아무 잘못 없지만 저주를 받은 양들은 결국 늑대들의 전리품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요즘 나오는 k-pop에서 어디 이런 가사를 찾을 수 있나 싶다. (요즘은 죄다 사랑타령이라는 혹자의 말이 떠오른다) 

그나저나 노래 제일 앞부분에 나오는 장우혁 랩 가운데 "2000년 6월 28일~ 미리 예고 됐었던 그들이 왔다"가 있는데, 도대체 이날 무슨 일이 있을 예정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찾아보니 영화 <인디펜던스데이>를 모티프로 한 지라 가상이 날짜를 설정한 것이 이 날이라고 한다) 



3.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너를 사랑하지만 보내주겠다는 훈훈하기 짝이 없는 노래다. 이 노래로 말할 것 같으면 90년대 로맨스를 압축했다고 할 수 있다. 주로 여리여리한 여주인공이 병에 걸려 죽는 드라마가 횡행하던 시절이었는데, 이 노래에도 꽤 잘 묻어난다. 어린 날 마음속 깊이 연모하던 그녀를 그대로 묻어버리겠다는(이렇게 쓰니까 뭔가 잔혹해보인다만) 내용이다. 강타가 어찌나 절절하게 노래하는지, 작사 작곡 및 보컬 트레이닝까지 맡은 유영진이 다 뿌듯했을 것 같다.

이 노래는 이후로 그리 많이 들리지 않았는데, 다시 들어도 정말 좋은 노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음도 좋고, 보컬도 좋다. 얼마 전에 '젝키와 HOT의 수록곡들을 이 시대에 다시 들고 나온다면, 아무래도 젝키가 유리할 것... 현재 공감가는 내용도 많고(주로 여심 자극하는 노래가 많으니) 리메이크하기에도 좋다'는 분석을 들은 적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과 같은 노래는 잘만 다시 구성하면(혹은 이대로 나와도) 요즘 세대들이 좋아할 법 하지 않을까? 음, 이 부분은 냉정하게 어찌 평가할 수가 없다. 



4. We are the Future

이 곡은 명실상부 HOT의 대표곡이다. "HOT 노래 가운데 뭐가 제일 좋아?"라고 물으면 열에 대여섯은 이 노래를 꼽는다. "이제는 모든 세상의 틀을 바꿔버릴 거야, 내가 내가 이제 주인이 된 거야, 어른들의 세상은 이미 갔다. 낡아빠진 것 말도 안되는 소린 집어 치워, The future is mine!" 이라는 인트로부터가 엄청나게 강렬하다. 대놓고 '어른들, 기존 세대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부턴 우리의 시대'라는 메시지를 던져댄다. 가사도 어찌나 직설적인지, 얼핏 야망까지 느껴진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니까, 나는 앞으로 내가 잘해 나갈거라 믿는다는 아주 희망적인 가사도 있다!) 

무엇보다 똑같은 삶을 강요받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내가 키워가겠다는 내용, 내 안에 꿈틀대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까지도... 이곡이 나온 게 1997년이니 필자가 초5때다. 우리 세대는 요즘 아이들처럼 발육이 빠르지도 않았고, 따라서 그땐 초경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알아둘 것이 있다. 이 당시에는 음악을 소유하는 개념이 강했다. 지금처럼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천리안이 이쯤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따라서 카세트테이프 또는 CD를 구입했다. (아니, CD도 흔치 않았다. 참고로 LP판 까지는 아니었다... LP는 그보다 이전 세대다) 

따라서 한 번 앨범을 사면 음이 늘어질 때까지 늘었다. 앨범에 들어있는 수록곡도 10곡 안팎이니 한 시간가량 들을 수 있었다. 말인즉, 초등학생때 겨우 용돈을 모아 음반점에 가서 테이프를 사면, 그걸 그 시절 내내 들었다. 전 앨범도 다시 듣고, 또 듣고 했다. 따라서 노래 하나가 그 시절 초등학생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막대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 때 들은 음악들이 죄다 저항적인 노래라, 우리는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 걸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이미 잘 깨닫고 있고, 그걸 바꿔나가야 겠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조금은 심어져 있다고. 



5. 행복

이 노래를 듣고 "우리 오빠들은 내 편이에요!"라고 말을 안 한 어린이가 없었다. 

노래 내용이 그렇다. 네가 힘들어하고, 뭔가 포기하고 싶을 때, 우리 강타 오빠가 "약속된 시간이 왔어요 그대 앞에 있어요"라고 해주니 얼마나 가슴이 뛰겠는가. 손을 잡아 일으켜주는 희준 오빠도 그 때는 그렇게 눈도 크고 귀여웠다. 3집의 '빛'과도 맥을 비슷하게 간다고 볼 수 있는데, '행복'이라는 제목 하에 희망을 마구 심어주는 이미지다. 

뮤직비디오만 해도 그렇다. 첫 장면에 얼핏 유승준을 닮은 것 같은 남자 무명배우가 나와서 테니스를 겁나게 못 치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이 시대에는 테니스와 볼링 등이 한참 유행이었다. 지금처럼 어른들이 대중적으로 골프를 치는 시절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배우는 나중에 테니스를 잘 친다. 꼭 여학우 뿐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행복이 가득하길 빈다는 훈훈한 노래다. 마음을 절로 열게 하는 노래다. 



6. 열등감

지금이나 그때나 친구놈이 배신때리고 내 여친을 가로채는 것에 대한 분노는 여전했나 보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 계보를 함께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은 노래 중 하나다. 

스토리로 치면 이렇다. 나는 절친인 너를 내 여친한테 소개해 줬는데, 너가 워낙에 돈도 많고 나보다 잘생겼고, 심지어 네 주변에는 여자도 많지 않나! 그래서 여친이 자꾸 너를 나와 비교한다. 그래서 난 열등감에 젖어서 여친에게 헤어지자고 했고, 여친은 "자신감 없는 네 모습 볼 때마다 내가 답답했다"며 "날 잡아줘, 난 널 사랑하니까"라고 한다. (결국 나는 열폭하지만 다행히 여친은 빼앗기지 않았다는 내용) 



7. 12번째 생일

세상에. 이 노래만큼 12살 소녀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노래가 있겠나. 내용은 이렇다. 

엄마 아빠는 엄청 무서운 분인데, 내 열 두 번째 생일 전날 엄빠한테 왕창 깨지고, 일요일인 내 생일날 나는 교회 갔다가 집에 왔는데 아이들이 파티 안 하냐며 집 앞에 몰려있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 아빠한테 싹싹 빌고 '말씀 순종 잘하고'(이게 가사다) 열심히 공부 하겠다고 해야지"라고 결심한다. 

왠지 내 얘기 같고, 그 땐 그랬다. 내 생일이라고 아이들이 우리 집 앞에 몰려있고, 지금 머릿속에 그려보면 얼마나 귀여운가. 화자인 '나'는 학교에서 내내 자랑을 했을 테고(일요일이 내 생일이다~라고) 아이들은 무어라도 얻어먹을 생각으로 집 앞에 몰려가 있던 셈이다. 그런데 이 아이 참 착하다. 혼난 다음 날 교회도 가고(그 시절 아침에 일어나 교회에 가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아침 8~9시면 엄청난 만화영화가 TV에서 방영됐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교회를 빠지려고들 했다.) 엄마아빠 말씀 순종도 잘 하겠다고 한다. 당시 HOT가 어른들에게 질타를 받던 것을 의식해 이런 내용을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노래는 참 동요같다. 어떻게 늑대와 양이라는 앨범에 이런 곡이 들어있었는지 지금 들어도 아이러니하다. 곡마다 변신을 하는 장우혁의 랩도 놀랍다. 



8. Tragedy 

마찬가지로 정말 '90년대 음악'이다. 오랫동안 너를 친구로 생각 했는데, 네가 남친이 생겼다니 뭔가 억울하다. 갑자기 네가 여자로 느껴진다! 라는 내용이다. 이 노래를 만일 '90년대 고등학생'의 처지에서 들었다면 주변 남자인 친구들을 순수하게만 보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제목도 tragedy다.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보라, 얼마나 비극적인가. 



9. 너와 나

앞 1집 편에서 매 앨범마다 '아 이게 이번 앨범 활동 마지막 곡이겠구나' 싶은 곡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2집에서는 이 노래가 딱 그 노래다. 

재미있는 걸 찾았는데, 98년도에 SBS에서 방영된 <스타예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젝키와 HOT가 예능에 나와 대결을 한다. 

►영상  https://youtu.be/XCyIFfOghMQ

젝키는 '탈출'이라는 노래로 박력있는 댄스와 함께 무대가 무너져라고 춤을 추는데, 그 다음으로 나온 HOT는 바로 이 노래, '너와 나'를 잔잔하게 부른다... 댄스vs.댄스로 하든, 발라드vs.발라드로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지금 와서) 든다. 

아무튼,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지막에 강타가 '너와 나~'라면서 목을 길게 뽑는 그 순간이다. 이 곡에는 랩이 없다. 하지만 래퍼 장우혁, 이재원은 다같이 부르는 부분(후렴구)에서 함께 마이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이 노래는 팬에게 바치는 HOT의 첫 노래이기도 하다. 첫 구절에 "(팬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아 널(팬들을) 사랑한거야. 날 바라보는 너의 눈빛이 따사로와. 나를 보고 미소짓는 너의 모습에 더욱 용기를 얻게 돼, 정말 고마워."부터 시작해서 "네가(너희들이) 세상에 없었다면 우리도 없겠지, 오랜 시간 너희가 보내준 마음(팬레터) 읽어 가면서, 다시 한 번 우리 사랑을 알 수 있었어. (...) 늘 함께 인거야, 너와 나"라는 식으로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 다음 앨범부터는 늘 팬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노래가 들어간다. 



2집 종합

늑대와 양이라는 주제 아래 꽤 많은 시도가 있었다. 이 시절부터 약 15년 동안 sm가수들은 '매 앨범 다른 이미지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 듯 하다. 컨셉이 늘 달라야 했는데, 대신 처음 데뷔할 때의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선에서 옷과 음악만 살짝살짝 바꿨다. 

2집에서 활동한 노래는 늑대와 양, 행복, we are the future 정도인데, 셋 다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 특히 we are the future에서는 보라색 비닐옷 같은 것을 입고 나오는데(이 때부터 머리 스타일들도 삐죽삐죽 선다) 필자는 이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오빠들'의 사진을 직접 찍어서는 한동안 품고 다녔다. 그땐 디카같은 것이 없어서 필름 카메라로 찍었는데, 밤인데다 조명도 어둡고 춤도 격렬해 다 흔들린 사진이던 기억이 난다. 어느 공연에서 찍은 건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만. 각설하고, 2집 수록곡들은 이 타이틀 3곡을 제외하고도 12번째 생일이나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과 같이 상당히 풍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엔 곡별 집계를 어찌 했는 지는 모르겠으나, 기획사에서 나름 여러 곡을 풀어놓고 이 컨셉 저 컨셉 살폈던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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