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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HOT 앨범 분석 - 1

deok

과거 사관(史官)들이 남긴 기록은 현재에 와서 역사가 되었다. 어떤 것이 사료(史料)로서 가치를 지니는 지에 대해선 사관의 주관이 개입하기 때문에 역사를 온전히 객관적이라고 볼 수 만은 없다는 말도 있다. 

각설하고, 필자는 1986년 생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던 1996년 HOT라는 존재를 처음 알았고 한참을 매여 살았다. (다시말해 나는 젝키 팬도 신화 팬도, 후에 god 팬도 되지 않은 온전한 HOT 팬이었고, 걸그룹으로 치면 핑클 팬이 아니라 SES 팬이었다. 아이덴티티가 상당히 분명했다.) 소심하고 게을러 집 앞에 가 기다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앨범을 모으고 콘서트에서 찍은 사진을 간직하고 틱톡이라는 달고 자극적인 HOT 모델 음료수를 즐겨 마시던 10대 소녀였다. 20년이 흐른 지금, 음악 전문가는 아니지만 분석 전공자이자 글쟁이 중 한 명으로서 HOT의 앨범과 수록곡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테면, 내가 들은 HOT의 곡은 모두 사료라고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게 다 젝스키스가 무도에 나와서다. 아, 내 시간이여...


오늘은 1집이다. 참고로 호야, 쭈냐 같은 당시 애칭 및 호칭은 덤덤하게 덜어내겠다. (에헴)


HOT가 데뷔한 건 9월이었다. 데뷔곡은 '전사의 후예'다. 사실 필자는 이 시점 그들을 잘 알지 못했다. 그 시기 4학년짜리 평범한 초딩의 시대로 말할 것 같으면- 서태지 세대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지금처럼 영어 교육이 엄청나던 시절도 아니었다. (알파벳을 중학교 들어가서나 배웠다.) 그 당시 일찍이 영어학원을 다니던 나는 HOT를 '핫'이라고 부르며 아는 척을 했다. (그 때의 쪽팔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필자보다 한두 살 많은 언니들은 대개 농구대잔치를 보며 이상민이냐 전희철이냐를 논하거나 서태지에 빠져있었다. 물론 그들이 HOT 시대의 주 팬층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당시 '전사의 후예'라는 노래는, 어떻게보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와 뉘앙스가 매우 비슷했다. 그도 그럴것이 '전사의 후예'가 '서태지의 아이들의 후예'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참고로 서태지는 그해 1월에 은퇴했다) 이수만 당시 사장은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시점까지 내다보고 HOT를 데뷔시킬 기억을 했던 것일지도. 

이후 '캔디'로 이들은 왕좌에 올랐고, 필자는 캔디를 시작으로 전사의 후예로 역주행한뒤 줄곧 악셀러레이터를 부왕 밟았다는 후문...

High-five of Teenagers라는 이름답게 HOT는 과연 십대들을 대변하는 컨셉을 계속 이어갔다. 1집부터 5집까지 내내 그랬다. 


먼저 유투브에 올라와있는 1집 풀버전 앨범을 공유하자면, 다음 링크로 ► https://youtu.be/jDanWwXMx94?list=RDjDanWwXMx94

1집 제목은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다.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 Candy

2. 널 사랑한 만큼 (As Much As I Loved You)

3. 전사의 후예(폭력시대) (Warrior's Descendant)

4. 노을속에 비친 그대 모습 (Your Image in the Sunset)

5. 내가 필요할때 (When You Need Me)

6. 오늘도 짜증나는 날이네 (Another Bad Day)

7. 너는 fast, 나는 slow (You're Fast I'm Slow)

8. 개성시대 (The Age of Uniqueness)

9. About 여자 (About Women)


1. Candy

필자가 에쵸티를 본격 좋아하기 시작하게 된 노래다. 많은 이들이 그랬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소위 잘 나가는 '일찍 눈 뜬 애들'이나 좋아하는 가수 같았고, 그들의 노래를 그대로 물려받은 '전사의 후예'를 좋아하기엔 좀 겁이 났던 것도 같다. 그런데 그 해 겨울, 갑자기 이 전사 컨셉이던 이들이 털뭉치를 온몸에 휘두르고 롯데월드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ㄷㄷ) 

사실 이때도 팬덤이 어느정도는 형성돼있던 시점이라 여느 여배우를 뮤직비디오에 출연시켰다간 난리가 났을 법도 했다. (웬 금발 여성이 생뚱맞게 출연하는 것도 다 그 때문...) 이 노래를 시점으로 문희준 팬이 급격히 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졸귀. "단지 널 사랑해"라며 치고나오던 당시 센터 토니안도 그렇고. 전사의 후예에서 장우혁 팬층이 두터워졌다면, 캔디에선 다른 멤버들에까지 사랑나눔이 이어졌던 것 같다. 

노래 자체는 발랄한 사랑노래고 다들 잘 아는 곡이니 패스. 굳이 비유하자면 젝키의 커플만치? (아아, 앞으로 젝키와의 비유는 하지 않겠다. 논쟁을 원치 않는다. ㅎㅎ 허나 언급을 안 할 수는 없다. 그 두 그룹은 역사를 지탱하는 두 축이었으므로.)


2. 널 사랑한만큼

아카펠라식으로 보컬을 최대한 살린 노래다. 당시엔 이 노래만 들으면 가슴이 그렇게 아렸다. (열 한 살짜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오빠들이 손가락을 부닥치며 또각또각 박자를 맞추는 데 어찌나 감미롭던지. 

사실 이 곡이야말로 전형적인 90년대 발라드다. 유영진의 창법과 스타일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 시대엔 특히 코러스를 넣을 때 2단으로 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으뜸화음을 넣는 느낌이랄까. '도'로 노래를 부르면 '미'음으로 꼭 코러스를 넣었다. (뭔가 용어가 있을텐데 이쪽 전공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3. 전사의 후예

모두 잘 알다시피 이 노래가 바로 HOT라는 이름의 역사가 시작된 바로 그 데뷔곡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사이프레스 힐의 'I ain't goin' out like that'이라는 노래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어 급히 캔디로 타이틀곡을 옮겨갔다고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H.O.T.#.ED.91.9C.EC.A0.88 

학교폭력 제로를 외치며 충격적인 뮤직비디오(학교폭력을 당하다 자살한 친구를 그리워하는 어떤 친구의 이야기...라는 슬픈 드라마다)와 함께 등장했다. 춤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것과 약간 비슷한 풍으로 좀 건들건들 하는 면은 있었다(ㅎㅎ). 멤버들이 소위 '아데'라 불리는 헤어밴드를 하고 멜빵바지를 걸친 채 나타났던 기억이 선명하다. 특히 안칠현, 아니 강타는 그 특유의 보이스로 꽤 세게 랩을 한다. 아, 사실 HOT 멤버들을 보면 장우혁, 이재원만 랩과 댄스 부문에 충실했다. 다른 멤버들은 이것저것 다 했던 것 같다. 강타야 리드보컬이었다만, 문희준은 랩하다 코러스 넣다 세컨보컬 하다 (결국 락의 세계로...)... 했고, 토니안도 랩도 하고 보컬도 하고... 가창력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하기로 하자.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이 부분이다. 멤버중 유일하게 해외파 출신인 토니안이 이런 영어랩을 한다!   

"히어뤼고 히어뤼고 이쓰탐투스탑 움! 더바욜린씨스템 얼더매스 이써밧탐 샹바리포러스탠포 와리자라 대리자라 뱅뱅뱅"

나이먹고 들어도 이렇게 들린다. 

(원 가사는 이거다. Here we go here we go it′s time to stop / MMM the violence hate and all the mess / it′s about time somebody should stand for / what is right that is right Bang bang bang)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엔 노래 가사 전체에서 한국말이 아닌 가사가 차지할 수 있는 비율이 정해져 있었다. 이를테면 영어 랩이 50%까지 되면 안 되는 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다만 그땐 그랬다. 멤버들의 나이도 만 15세 이상인가 그랬다. 그래서 윤미래가 당시 업타운으로 데뷔했을 때 나이를 속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좋은 노래다. "아~~~ 니가니가니가 뭔데 도대체 나를때려 왜니가니가 뭔데"라는 장우혁표 랩은 정말 지금 들어도 사이다가 따로 없다. 마지막엔 소금인지 대금인지 전통 목관악기의 사운드가 들어가는데, 이 영향은 후에 젝스키스의 <학원별곡>에도 반영됐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학원별곡>은 강성훈의 '아리아리아리요 쓰리쓰리쓰리예~ 아주아주 먼길을 왔네에에에~'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풍으로 시작해 마지막에 사물놀이패 차림을 한 백댄서들이 무대에 합류하는 것으로 끝난다) 

당시 초딩사회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서로 돌아가며 왕따를 시켰다. 꽤 큰 사회 문제로 꼽혔었다. 일본의 '이지메'라는 말이 들어온 것도 이때 즈음이다. 물론 시대를 통틀어보면 언제나 따돌림은 있었다. 카톡방에 지겹도록 초대해서 욕을 하는 잔혹한 따돌림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 그 시절엔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 옆에 늘 누군가 있었다. 일종의 정의의 사도 같은 사람이 한 두 명은 있었다. 이 곡도 그 누군가에게 '네가 도와야해'라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 때 시대 따돌림의 도드라진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던 소위 '날라리'라 불리던 아이들이 요즘 시대처럼 '집안부터 성적, 외모까지 모든 조건이 완벽한' 그런 아이들은 아니었다. 



4. 노을 속에 비친 그대 모습

솔리드 느낌이라기보단 박남정 느낌이 날법도 한 90년대 비트 음악이다. 멜로디는 다소 촌스럽기도 하지만 그냥 그 때는 이런 풍의 노래가 정말 많았다. 강타가 거의 혼자 노래를 다 한다. 장우혁이 아예! 카하아- 카하아- 라는 효과음을 넣는다. 기타 전자음도 참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 노래와 가장 비슷한 느낌을 굳이 찾는다면(?) 이 노래가 있다. 

https://youtu.be/QSaKwjZX4pY   드라마 M의 OST '나는 널 몰라'.... 참고로 이 작품은 1994년 8월에 방영된 MBC 드라마로,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해드리자면 심은하 씨가 초록색 눈으로 출연한다는 본격 공포물이었다. 최윤실 이라는 여가수가 부른 '나는 널 몰라'라는 이 곡은 드라마 타이틀곡이기도 하다. 



5. 내가 필요할 때 

이또한 전형적인 유영진 노래다. (ㅋㅋ) 강타가 유영진에 빙의해서 열심히 부르는 노래다. 다행히 장우혁의 아주 짧은 랩이 있을뿐, 이재원표 내래이션은 안 들어가 아직까지 손발이 다 오그라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다음 앨범 발라드부턴 제법 오글거리는 부분이 많다. 

흰 풍선 흔들면서 눈물 흘리면서 노래 따라 불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HOT 앨범들의 특징을 보면 "아, 이 곡을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 활동은 접겠구나" 싶은 곡들이 꼭 있었다. (그래서 해체설이 나올 때마다 그 해 앨범을 받아들고는 '설마, 이게 해체용 노래야?'라며 조마조마해했던 기억이 난다. 해체설은 한 3~4집쯤부터 나왔던 것 같다) 그 곡들의 특징을 보자면, 주로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는 노래들이다. 질척한 사랑노래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정말 오빠들이 내 옆에서 나를 토닥토닥 해주는 느낌의 곡이 많았다. 대부분 강타가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열심히 잘 한다. 


6. 오늘도 짜증나는 날이네

앞 곡이 강타를 위한 강타에 의한 노래였다면, 이 노래는 장우혁을 위한 장우혁에 의한 노래다. 물론 이재원도 랩을 하고, 무려 강타도 랩을 한다. 

하지만 "창문밖에 지나가는 시끄러운 차소리가 아침에 날깨웠지이이이~ 라면먹고 잤더니 얼굴이 퉁퉁부어 오늘도 짜증나는 날이네"라는 장우혁 랩은 정말 그 구절구절마다 온갖 짜증이 다 묻어나는 듯 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짜증을 일으키는 요소는 비슷한가 보다. 곡 중간 중간에 징 같은게 울리는데, 국악과 힙합의 절충점을 찾아가는 듯한 느낌은... 아마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오마쥬가 아닌가 싶은 느낌도 없지는 않다만. 


7. 너는 Fast 나는 Slow

90년대 댄스음악의 전형이다. 듀스 노래랑 정말 비슷하다. 중간에 토니안과 문희준이 번갈아 고음을 뽑아내는데 정말 노래를 못한다. 하지만 그게 이 음악의 매력이다. 당시 이들의 나이는 겨우 열여섯~열여덟이었다. (장우혁-토니-문희준이 78년생, 강타가 79년생, 이재원이 80년생이다) 세상에 정말 어렸었구나! 

참고로, 중간에 어마어마한 랩이 있다. "쬬맨~ 쬬맨~ 쬬쬬쬬맨~"이라고 한다. 소속사 사장(이수만)은 이미 이때부터 후크에 대한 욕심이 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8. 개성시대 

이 시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못생겼다고 집에만 박혀있지 말라는 내용이다. (ㅋㅋ) 당시엔 뭐 일반인이 성형을 한다는 건 거의 상상도 못 했고(쌍커풀 정도가 맥시멈이었다) 어린이들이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는 것은 엄마한테 빗자루로 쳐맞을 짓이었다. (주로 엄마의 립스틱을 탐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화장품이 나온 것도 이 즈음이 처음이었다. 현재도 청순가련한 10대 여자 모델이 주로 광고에 나오는 '클린앤 클리어'도 이 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유행타지 말고 서로의 개성을 살리자, 신세대여~" 라는 가사에서 벌써부터 느낌이 오지 않나. 당시 시대적으로 X세대라는 말도 이미 지났고, 신세대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2000년대 들어선 사이버세대라 했던가. 매 시대 20대를 지칭하는 단어는 참 다양했다. 


9. About 여자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당시 이들의 나이가 기껏 많아봐야 열 여덟살이었다. 여자에 대해 "미지수야 미지수~"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지도. 여자에 대해 표현한 부분도 지금와 보니 상당히 재밌다. 여자에게 세 가지 힘이 있는데, 하나는 말의 힘, 두번째는 유혹하게 만드는 몸매, 세 번째는 애교라고. 이 세가지를 다 이용하는 여자가 진짜 무서운 여자라고 한다. (ㅋㅋㅋ) 짜식들, 어린 나이에 꽤 굉장한 걸 깨달았구나. 

재밌는건 이 노래에서도 '신세대'를 언급한다는 것이다. 신세대 남성, 신세대 여성. 요즘 어느 노래에 이런 표현이 들어간단 말인가. 



1집 종합

1990년대, 그 시대를 풍미하던 감성과 트렌드를 모두 아우르려고 열심히 노력한 음반이다. 이를테면 '안전빵'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데뷔해서 정착하려면 아무래도...) 허나 2집부턴 놀랍도록 바뀐다. 왜냐? 그때부턴 HOT가 대세를 리드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2집과 1집이 가장 차이가 크다고도 할 수 있는데, 1집은 캔디를 제외하면 대부분 분위기라는 게 꽤 비슷했다. 전사의 이미지, 뭔가 십대를 대표한다는 느낌을 좀 어둑어둑한 반항아의 분위기로 내뿜으려고 노력한 티가 난다. 사랑 노래를 해도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은 게 다 그 때문이다. '내가 필요할 때'도 결국 '우리는 10대를 대표하지만, 10대인 너희들에게는 친구야, 우리가 위로해줄게'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 않은가. 

2집부턴 정말 달라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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